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사는 곳은 가버나움이었고 예수님이 계신 곳은 갈릴리 가나, 거리는 34km 정도입니다.
이렇게 한걸음으로 예수님께 달려온 이유는 그의 아들이 곧 죽을 것만 같은 위중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거의 죽게 되었다”(47절)의 원어로 미루어 볼 때 아마도 그의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약했고, 계속 앓았을 것이라 추측됩니다. 그런 아들이 곧 죽을 것 같게 되자 예수님이 갈릴리 가나에 오셨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와서 간절히 요청합니다.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47절)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아버지의 간청에 찬물을 끼얹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기적만 바라고 나를 찾아왔구나. 아직도 내가 목적이 아니라 기적이 목적이라니.”(48절 참조)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49절)
그렇다면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셔야 자연스럽습니까?
“진정한 믿음이 아니라 고쳐주지 못하겠다.”
그런데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50절)
이 사건에서 어느 부분이 클로우즈업 하여 보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아들의 병이 나은 부분만 주목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기록하신 목적은 예수님의 치유 사건을 하나 추가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리기 위한 책입니다.
지금 이 사건은 예수님이 왕의 신하의 소원을 들어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두 번째 표적사건입니다.
“하나님인 내가 너를 위하여 이 땅에 왔다!”
이 중심을 놓치지 말고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요즘도 불치병을 환자가 교회 다닌 후 병이 나으면 기적이라고 사람들의 큰 관심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일은 어느덧 마치 자연이치인 듯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만 같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심은 온 우주의 기적들을 모두 합해도 비교조차 되지 않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죽을병에서 낫더라도, 벼랑 끝 고난이 역전되더라도 수많은 문제 중 하나가 해결될 뿐입니다.
그러나 나를 위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그 일이 믿어진다면, 인생의 어떤 문제도 해결 됩니다.
내게 덮친 문제가 천만가지일지라도 해결할 열쇠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오셨다는 믿음의 열쇠
한 줄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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