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동안 거동하지 못하고 있는 중증 환자에게 예수님이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6절)
왜 예수님은 병자에게 낫기를 원하느냐고 당연한 것을 물으셨을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환자가 낫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가 처한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어쩌면 그는 낫기를 포기한 것이 오히려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3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꼼짝하지 못하는 중증 마비 환자입니다. 누군가 최후의 방법으로 거동도 못하는 이 사람을 베데스다까지 데려다 주긴 했지만 지금 이 사람 곁에는 그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7절 참조) 때문에 어쩌면 이 사람이 베데스다에 누워있는 동안 물이 동했을지도 모르나 조금도 움직일 수 없는 이 사람이 그의 능력으로 1등으로 그 못에 들어가 병을 낫는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실패하고 또 실패하면서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다 그는 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조차 포기했을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이 물어보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왜 예수님은 이렇게 물어보셨을까요?
갈망이 없으면 어떤 은혜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갈망의 도화선이 없으면 은혜의 불이 붙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당 함께 예배를 드리는 모든 사람이 같은 은혜를 받습니까?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예배자마다 갈망의 심지가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예배를 전혀 갈망하지 않으면서 종교루틴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함께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은혜를 받더라도 그와는 무관한 예배가 됩니다.
큰 심지, 작은 심지, 굵은 심지, 가는 심지 내 안의 갈망의 심지 상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갈망의 심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도 낫고 싶다.’
‘나도 은혜 받고 싶다.’
‘나도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
‘나도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싶다.’
‘나도 신앙이 성장하고 싶다.’
지금 나에게도 주님은 물어보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한 줄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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