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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도시락

나는 죄의 나무입니다(요한복음 8:7-9)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자는 돌로 치라고 명령했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할 겁니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고자 간음하던 여인을 현장에서 잡아서 예수님께 데리고 와 묻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님이 어찌하실지 예측한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또 모세의 율법을 어길 것이고, 이 여자를 심판하기 위해 그 곳에 많은 사람을 준비했으니 그들이 율법을 어기는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라는 시나리오. 이렇게 믿어 의심치 않는 완벽한 함정을 파놓고 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예상치 못한 엎드려 땅바닥에 손가락으로 뭔가를 쓰는 행동을 하십니다.

조급한 마음에 어떻게 할지 빨리 말하라고 재촉하자 이렇게 답하십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그러더니 다시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뭔가를 또 쓰십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람들이 손에 쥔 돌을 내려놓더니 하나씩 하나씩 빠져나갑니다.

결국 예수님과 이 여인만 남았을 때 예수님이 여인에게 묻습니다.

“너를 정죄하던 자들이 다 어디 갔냐?”

“아무도 없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죄 없는 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실 때 ‘죄’를 세 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 간음죄

죄에 대한 가장 좁은 이해입니다. 간음죄로 이해하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간음죄를 짓지 않았으니까 이 여인을 판단하고 심판할 자격이 있지.’

 

2. 간음죄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죄

죄를 좀 더 확장하는 이해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간음죄를 짓지 않았지만 다른 죄를 지었으니 나 또한 저 여인과 다를 바 없는 죄인이야. 이런 내가 누구를 판단하겠어.’

 

3. 사람의 존재 자체가 죄

뭔가 잘못해서 내가 죄인 것이 아니라 나 자체가 죄라고 생각하는 이해입니다.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인 것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죄의 나무인데 누가 누구를 판단하고 정죄하겠어.’

사과열매를 맺든 맺지 못하든 사과나무인 것처럼 죄를 짓든 죄를 짓지 않든 사람 자체가 죄의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죄 지을 환경이 아니라서 죄를 짓지 않았을 뿐 똑같다고 바라봅니다.

 

죄를 바라보는 시선이 믿음을 결정합니다.

‘나는 간음하지 않았으니 죄인이 아니야.’

이렇게 생각한다면 아무리 말씀을 읽어도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이 말씀을 어떤 시선으로 읽습니까?

‘내가 바로 간음한 여인이었구나.’

‘상황이나 조건이 되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죄의 나무인 나로구나.’

믿음의 시선으로 말씀을 읽는 자, 간절히 내 죄를 해결하려고 하는 자만이 말씀을 읽을 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열매와 상관없이 나는 죄의 나무입니다.

한 줄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