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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도시락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아 혼란스럽다면(요한복음 18:1-11)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를 건너 겟세마네동산(감람동산)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의도적으로 겟세마네동산을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 ‘동산’이라고 칭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1절)

요한에게 ‘구원’은 이것이었습니다.

기드론 시내를 건너 잃어버렸던 동산을 회복하는 것!

때문에 의도적으로 동산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잃어버린 동산을 들어가려면 반드시 건너야만 하는 기드론을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건넜습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대신’과 ‘함께’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을 때 나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사심으로 나도 주님과 함께 살아서 동산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동산 안의 삶이 되었는데 집도 차도 직장도 아내도 남편도 자녀들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라 혼란스럽습니까? 분명히 변한 것이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9절)

동산 밖은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들과 반드시 없어야 되는 것들이 선명하게 구분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산 안은 그 무엇 하나도 잃지 않는(버릴 것이 없는) 삶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동산 안의 삶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동산 밖에서는 매사가 불만이고 아쉽고 부족했는데, 동산 안에서는 모든 것이 소중하고, 의미 있고, 가치 있고, 중요한 것으로 달라집니다.

시몬 베드로를 보십시오. 칼로 대제사장의 종 말고를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렸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싹둑 잘라버리고 싶을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질병도 싹둑, 고난도 싹둑, 나를 불행하게 하는 사람도 싹둑, 나를 힘들게 하는 사건도 싹둑! 동산 밖에서는 누가 보더라도 반드시 없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몽땅 잘라버리고 싶지만 힘이 없어서 꾸역꾸역 참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말고의 귀를 도로 붙이신 예수님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인생에서도 말고의 귀처럼 내가 힘들게 억지로 없애버렸는데 주님이 다시 도로 딱 붙여놓으신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주님의 구속사 안에서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말고와 싸우지 마십시오. 지금 우리는 에덴의 모형인 이 땅에서 참 에덴에서의 삶을 훈련받는 중입니다.

‘말고도 내게 필요한 것이었구나.’

깨달으라고 구원하신 후 바로 데리고 가지 않고 악한 세상에 우리를 남겨두신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내게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여전히 내 마음과 내 눈은 그렇지 못합니다. 당장 칼로 잘라 버리고 싶은 것들도 나에게 필요한 것임을 깨달아 믿음으로 반응하게 하옵소서.”

 

한 줄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