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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오연택 목사 미가 강해

목 마른 관계(미가 7:1-13)

목 마른 관계 설교동영상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과일을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포도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경건한 자가 세상에서 끊어졌고 정직한 자가 사람들 가운데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며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 두 손으로 악을 부지런히 행하는도다 그 지도자와 재판관은 뇌물을 구하며 권세자는 자기 마음의 욕심을 말하며 그들이 서로 결합하니 그들의 가장 선한 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 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수꾼들의 날 곧 그들 가운데에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하리로다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당하려니와 마침내 주께서 나를 위하여 논쟁하시고 심판하시며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 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보리로다 네 성벽을 건축하는 날 곧 그 날에는 지경이 넓혀질 것이라 그 날에는 앗수르에서 애굽 성읍들에까지, 애굽에서 강까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 산에서 저 산까지의 사람들이 네게로 돌아올 것이나 그 땅은 그 주민의 행위의 열매로 말미암아 황폐하리로다

미가 7:1-13

 

미가 선지자가 현재 하나님의 백성들이라 일컫는 이스라엘 특별히 남유다 사람들의 삶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재앙이로다”(1)

성경에 재앙이라는 단어는 딱 두 번 나옵니다.

욥기에 한번 그리고 미가서에 한번 이렇습니다.

나는 여름 과일을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포도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1)

현재 그들의 삶을 아무 열매도 없는 삶으로 비유합니다.

열매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어떤 상황입니까?

사과를 다 따버린 사과밭, 포도를 다 딴 포도밭을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년이 되면 저 나무에 사과도 열리고 포도가 열릴 거야.’

이렇게 생각해서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는 모습을 그다지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겠지만 만일 수 년 동안 계속 열매 맺지 못하고 앙상한 가지만 있는 사과나무 밭, 포도나무 밭을 지나간다고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수년 동안 단 한 번도 사과를 열매 맺지 못한 사과나무 곁을 지나가고 있다면?

포도나무도 마찬가지입닙다.

그 곁을 우리가 지나가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열매가 하나도 없다.

그렇다면 열매가 없다는 것은 도대체 뭐가 없다는 것인가?

이것을 설명해 주는 것이 본문 6절까지 이어지는 말씀들입니다.

결론적으로 열매가 없는 삶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웃을 믿지 말며 친구를 의지하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에게라도 네 입의 문을 지킬지어다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5, 6)

이것이 열매가 없다는 뜻입니다.

보통 열매가 없다고 하면 돈이 없는 것, 건강이 없는 것, 일이 잘되지 않는 것 등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미가서에서 열매가 없다는 것의 매우 분명한 증거는 돈이 없는 것, 일해도 남는 것이 없는 삶, 고생만 하고 병만 생긴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미가서에서 말씀하시는 열매 없음은 원수가 자기 집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사람과의 모든 관계가 다 깨졌습니다. 심지어 부모와 자식 간에도 관계가 깨졌습니다.

친구관계, 부부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기본적인 인간관계가 다 깨져서 부모와 자식이 원수가 되는 것이 곧 열매가 없다는 뜻이라고 말씀합니다.

때문에 미가서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 삶에 믿음의 열매가 풍성하다는 본질적인 뜻은 사람과의 관계가 풍성한 것입니다.

신앙의 열매를 맺었는가?

신앙의 열매가 없는가?

우리는 이에 대하여 분별할 때 미가서의 기준으로 봐야 합니다.

예수 믿고 많은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된 것, 예수 믿고 사업이 잘 되는 것, 예수 믿고 건강이 회복되는 것과 같은 것들이 신앙의 열매인 것은 맞습니다. 그것이 열매가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있어야 되는 열매는 무엇인가?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더욱 강해지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살아가는 사람의 범위가 더 넓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잘 믿어서 우리 안에 믿음의 열매가 생기면 가족 안에 관계가 회복됩니다. 그것이 신앙의 열매입니다. 예수 믿고 가족 사랑이 회복이 되는 것.

전에는 가족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면서 갈등하고 싸우고 미워했습니다. 날마다 전쟁은 아닐지라도 친밀함과 사랑이 없는 가족이었습니다.

그런 가족으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한 가족으로 살아가기는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기본적인 것만 하는 기본적인 가족관계가 있습니다.

남은 아니고 우리 식구긴 해. 우리 부모님이고 우리 자녀이고 우리 형제들이야. 그래서 한 집에서 살기는 합니다.”

이렇다면 가족이라고 하긴 하겠지만 그런 수준에서의 가족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사랑하는 가족.

정말 챙기고 돌보고 보살피고 관심을 갖고 필요를 찾고, 뿐만 아니라 깊은 마음의 대화를 하는 가족.

가족들에게 마음을 나누는 것보다 집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나누는 것이 더 편하고 좋습니까? 그렇다면 사실은 가족보다 친구나 이웃 그리고 동료가 더 가까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잘 믿으면 가족이 진정한 가족이 되는 열매가 맺힙니다.

함께 마음을 나누고, 서로 사랑으로 살피고 챙깁니다.

그것이 가족관계의 열매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신앙이 더 깊어지게 되면 그 관계의 열매가 확장됩니다.

가정에서 친척들도 확장, 가정에서 친구들로 확장, 가정에서 교회 공동체에게로 확장, 가정에서 회사 동료에게로 확장, 이처럼 계속 관계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열매입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을 읽어보셨습니까?

결론은 이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산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관계를 먹고 삽니다.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합니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갑니다.

그래서 사랑의 관계가 두텁고 넓은 사람일수록 행복한 삶, 건강한 삶을 살아갑니다.

세상 사회에서 말하는 단순한 내용이 아니라 성경도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에 아담이 살 수 있도록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갖추어 준비하셨습니다.

모든 것들을 준비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빚으셔서 에덴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담이 에덴에서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2:18)

뭐가 안 좋습니까?

혼자서 에덴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부족함 없이 다 누릴 수 있는데 정말 안 좋을 것 같습니까?

에덴은 부족한 것이 없는 그야말로 낙원입니다.

우리도 때때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는 사람에게 너무 많이 지치고 사람 때문에 힘들고 사람 때문에 상처 받고 사람 때문에 고통 받습니다. 때문에 어디 에덴과 같은 낙원이 있다면 그 사람들 다 떠나서 거기 가고 싶은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 기준으로 하나님께서 좋지 않다고 하신 말씀은 이해가 안 됩니다.

이게 왜?”

뭐가 부족해?”

부족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안 좋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계속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보시기에 좋았더라.”

보시기에 좋았더라.”

그리고 아담을 만드신 후에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시기에 매우 좋았더라.”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을 보시며 보기가 안 좋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아담을 잠들게 하신 후 그의 갈비뼈를 취하여 아내를 만드신 후 아담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그제야 하나님은 보시기에 좋으셨습니다.

이제 됐다.”

이처럼 사람은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심지어 환경이 에덴처럼 낙원과 같을지라도 열매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의 열매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하와를 보면서 아담이 얼마나 좋아합니까?

아담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흙으로 빚어진 후 아담의 코에 생기가 들어가 그가 생명이 되었을 때 딱 눈을 뜨자마자 ! 여기가 지상낙원이네!” 이렇게 감탄했습니까?

먹을 것이 이렇게 많고, 공기도 좋고, 풍경까지 훌륭하고, 물도 달고, 짐승들까지 귀엽다고 하면서 감탄하지 않았습니다.

에덴에서 아담의 감탄사가 언제 제일 처음 나왔습니까?

하와가 아담의 눈앞에 등장했을 때입니다.

눈을 떠보니까 그 앞에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자를 보면서 이렇게 감탄합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이처럼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살도록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은 죄가 결과적으로 관계를 깨뜨립니다.

우리 안에 죄가 있으면 관계가 다 깨집니다.

우리는 범죄하지 않으면, 어떤 잘못을 하지 않으면, 즉 범죄의 모습들이 내게 없으면 스스로 나는 괜찮아.’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관계가 건강하지 않으면 문제가 심각하다고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리입니다.

혼자 있는 아담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뭐라 하셨습니까?

문제가 있다.”

우리도 사람과의 관계에 어려움이 생기면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눈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지 못하면 열매가 없게 됩니다.

아무리 먹을 것들이 많고, 육체를 즐겁게 하는 것들이 넘칠지라도 내 곁에 사람이 없으면 이렇게 깨달아야 합니다.

내가 열매가 없구나.’

내가 지금 쫄쫄 굶고 있구나.’

이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열매는 먹는 것 아닙니까?

우리를 더욱 살아있게 하고 더 건강하게 하고 더 배부르게 하고 더 만족하게 하는 그 열매는 바로 사랑입니다. 관계입니다.

이런 열매가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고 하십니다.

물론 미가서 1장에서 하나님을 헛되이 예배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시기는 하는데 하나님을 헛되이 예배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헛되이 예배하면 관계에 사랑이 없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제대로 예배했고 영과 진리로 예배를 했다면 예배 후에 관계가 회복돼야 되는 게 맞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사마리아 수가성에 있는 여인은 예배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4:20)

도대체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맞느냐는 물입니다.

또 이 물음은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진정한 예배냐는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마다 하나님이 찾는 예배자라고 말씀하시니까 그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이 여인 안에 예배가 회복이 되었습니다.

이 여인이 예배가 회복된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마을 속으로 뛰어 들어가 마을 사람들과 어울립니다.

이 여인은 바로 이 일이 있기 전까지 사람들이 많이 물을 긷는 시간을 피해서 우물가로 물을 길러 왔습니다. 사람과 관계가 다 깨진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향하여 이미 관계가 깨졌다고 하는 증거를 내세웁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16)

여인이 이렇게 답합니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17)

그 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18)

이 여인은 계속 관계가 깨졌습니다.

이 여인은 물을 길러 우물가에 나왔습니다.

목마르다는 것의 정체가 무엇입니까?

사랑에 목마른 것입니다.

관계에 목마른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4)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우리는 무엇에 목이 마릅니까?

돈의 목마름, 명예의 목마름, 권력의 목마름, 출세의 목마름, 성공의 목마름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에 목이 마른 것입니다.

우리는 관계에 목이 마른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 관계에 대하여 목마른 한 여인이 등장한 것입니다.

모든 관계가 다 깨진 여인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누구를 만납니까?

예수를 만납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리스도와 인격으로 만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리스도와 사랑으로 만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이 여인이 본문에서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 것은 그 안에 예배가 회복되었다는 뜻이고, 그 안에 진정한 신랑을 만났다는 뜻이고, 그가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고 누렸다는 뜻입니다.

그러고 난 후 여 여인에게 나타난 첫 번째 현상이 전도가 아니었습니다.

관계가 회복이 돼야 전도도 되는 것입니다.

싸워서 얼굴 보기도 싫고 만나기도 싫고 껄끄럽고 불편한 사람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면 전도가 됩니까?

이 여인이 전도했다는 말씀의 전제는 이 여인이 그 마을 사람들과 관계가 회복됐다는 뜻입니다.

관계 회복은 이 여인이 참된 예배를 회복한 후 나타난 첫 번째 증거입니다.

정말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렸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렸다면 관계가 회복돼야 합니다. 더 사랑스러워져야 되고 더 사랑해야 되는 거고 더 사랑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배드리고 나서 똑같다면, 우리의 관계에 전혀 개선이 없다면, 심지어 관계를 개선하고자 하는 도전도 없습니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사랑해야 되는데.’

사과해야 하는데.’

용서해야 하는데.’

잘해줘야 하는데.’

이해해 줘야 하는데.’

품어줘야 하는데.’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하는데.’

이러한 도전조차도 없습니까?

그렇다면 영과 진리로 예비한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서 오순절 마가다락방의 성령의 임재 이후에 초대교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막 삼천 명, 오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온 것이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성경은 그 증거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날마다 모이기를 힘쓰며”(2:46)

날마다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떡을 떼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회복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회복으로 제시하십니다.

성경은 다 일관적입니다.

창세기에서의 아담과 하와 관계가 그렇습니다.

그 관계에 깨지면 죄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미가서에서는 우리에게 열매 없음이 인간으로서 깨지면 안 되는 기본적인 관계, 가족 관계까지 모두 깨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죄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회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미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7)

하나님께서 우리의 관계 없음, 열매 없음, 사랑 없음으로 인해 진노하셔서 심판하셨고, 오늘 우리에게 재앙이 떨어지지만 그래도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 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겠다고 합니다.

나는 계속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이 그렇게 나를 심판하시는 것을 재앙으로 여기지 않고 이것을 소망으로 회복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9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그의 진노를 당하려니와 마침내 주께서 나를 위하여 논쟁하시고 심판하시며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공의를 보리로다”(9)

내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만 그 진로를 통하여 하나님이 나를 정결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세상을 심판하는 기준의 모델로 내놓으시겠음을 확신하며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왜 심판하십니까?”

사랑 없음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모두 자기만 위해서 살아갑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를 희생하며 이웃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교회 안 다니고 예수 없는 세상 사람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십니다.

봐라! 내 백성은 너희들처럼 살지 않아!

내 백성은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도 내놓아!”

그런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렇게 만들어 내시겠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믿음의 회복이고 그것이 부흥이고 그것이 열매입니다.

그때 우리 안에 에덴이 회복됩니다.

거기에서 천국, 하나님나라가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순종하라고 명령하시는 그 모든 순종의 명령의 본질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에 순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3:3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명령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미가 선지자 시대의 사람들이나 예수님 시대에 바리새인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까?

그들의 순종은 죽은 순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순종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는 순종은 다 죽은 것입니다.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18:18)

이 사람은 관원일 뿐 아니라 부자이고 청년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묻습니다.

제가 뭘 더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

예수님께서 답해주십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18:20)

율법을 모두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 이 관원이 대답합니다.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18:21)

다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18:22)

그 청년에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가 가진 재물을 모두 팔아 이웃에게 나눠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는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율법을 다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의 순종의 모습은 죽은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청년 관원에게 이웃 사랑에 관련된 율법만 주셨습니다.

이웃에게 다 나눠주고 오라고 하십니다.

즉 너는 모든 순종은 잘 했으나 그것은 껍데기,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아있는 순종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지고 있는 돈 가지고, 네가 가지고 있는 건강한 젊음 가지고, 네가 가지고 있는 권력과 사회적 높은 지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나를 좇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말씀이 하나로 연결됩니다.

주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니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이라는 말씀은 전에 없던 계명이라는 뜻이 아니라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말씀, 명령의 본질은 사랑이고 우리의 순종은 그 사랑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그렇게 순종할 때 우리 안에 열매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순종함으로 인하여 내가 사는 것입니다.

사랑에 순종할 때 사실은 내가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잘해주는 사랑을 마치 내 것을 나눠주는 것처럼 무척 아까워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열매가 더 생기는 것입니다.

내 안에 양식이 더 생기는 것입니다.

내 안에 생명이 더 채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더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가는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재앙으로 심판하여 멸망시키시지만, 그 일을 통하여 우리를 다 씻으셔서, 온전한 회복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사랑하는 사람들로 관계가 회복되고 사랑이 회복되어 진정한 삶이 회복되는 그 하나님을 내가 바라보며 기대합니다.”

본문 미가 선지자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 안에 어떤 삶의 고난이 찾아올 때 초점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뭘 더 고쳐야 되나?’

내가 뭘 더 회복해야 되나?’

사랑에 초점을 맞추시면 됩니다.

그럴 때 재앙처럼 경험되고 재앙처럼 보이는 그 하나님의 일하심이 회복처럼 보이고 고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열매 없는 내 인생 가운데 다시 열매를 있게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황폐한 땅에 열매가 없어 그 땅을 좋은 땅으로 다시 회복하고자 기경하려고 한다면 얼마나 땅 입장에서는 얼마나 힘이 듭니까? 다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재앙처럼 보이는 이 일을 좋은 땅으로 기경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로 보십시오. 메마르고 황폐한 땅 위에 앙상한 가지만 있던 이 나무에 비로소 달고 좋은 열매가 풍성하게 열려 그 열매로 나도 배부르고 내 옆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도 배부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포도원 아닙니까?

포도원이 우리 안에서 더 회복되고 더 풍성해지고 더 열매가 많이 열려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 열매를 나누어 줄 수 있는 그런 인생, 그런 교회가 반드시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우리 안에 열매가 무엇인지, 우리 안의 믿음이 무엇인지, 우리 안에 순종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다시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여 우리 안에 열매 없음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황폐한 우리 땅을 다시 기경하여 주셔서 우리 인생의 앙상한 가지 위에 탐스럽고 달콤한 아름다운 열매들이 더 풍성하게 열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