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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오연택목사 요한복음 강해

예수님 맞을 준비(요한복음 12:9-19)

예수님 맞을 준비 설교 동영상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요한복음 12:9-19

 

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종려주일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이 머물고 계셨던 베다니 나사로의 집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하는 나사로도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소위 종려주일이라고 부르는 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일은 공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때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던 것은 네 번째 방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루살렘 입성은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으시기 위함이었던 동시에 만왕의 왕으로 입성하시는 즉 온 우주의 통치자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게 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쳤습니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13)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맞이했는지에 대하여 성경은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즉 재림의 주를 우리가 맞이하게 될 때이든 우리가 주님 앞에 가서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될 때 어떤 모습이어야 되는가에 대하여 기록된 말씀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때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입성을 환호하고 맞이했던 사람들의 기대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 목적과는 다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모습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13절을 보면 3개의 동사가 나옵니다. 3개의 동사를 주목해서 보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다시 만나야 되는지, 신랑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맞이해야 되는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어야 되는지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예수님이 오실 것을 기다렸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예수님 만나기를 기뻐하고 기다리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역사의 시간 속에 찾아오실 주님을 만나게 될지 아니면 내 역사의 시간이 다하여 이 땅에서의 시간이 끝나 주님께로 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본질적으로 우리에게는 예수님 만나기를 기뻐하고 기다리고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내일 오신다면?

그렇다면 준비가 덜 되어서 다급해지면 안 됩니다.

네 시간이 다 끝나서 이제 내일이면 네가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직 준비 안 되었어요.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이래서는 안 됩니다.

언제든지 내 시간이 끝나든 주님의 시간이 되었든 주께서 우리를 만나러 오실 때 언제든지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는 것이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요?

이에 대하여 13절에 나오는 세 가지 동사를 통하여 말씀해 주십니다.

가지고’ ‘맞으러’ ‘나가

사람들은 예수님을 맞이할 때 빈손으로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종려나무를 손에 들고 그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이 종려나무는 왕이나 통치자를 상징합니다. 즉 그들이 종려나무를 흔들며 예수님을 맞이했다는 것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새로운 왕임을 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외쳤던 것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종려나무를 흔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 입장에서 통치자로 인정하여 만왕의 왕으로인정을 하는 것이었듯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만왕의 왕으로, 그리스도로, 인정해야 합니다.

단순히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렇게 말만 하면 될까요?

아닙니다.

그 예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우리에게 종려나무의 삶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인정하는 삶이 우리 안에 있습니까?

단순히 물리적으로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흔드는 행동을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종려나무의 삶이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인정하는 종려나무여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예수님으로 인정하는 게 무엇입니까?

그분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1)

즉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아버지께로 가는 것이 아니라 주신 말씀을 준행하는 자들이 아버지께로 간다는 뜻입니다.

주여!” “주여!”라고 입술로는 외치지만 마음으로는 주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주님을 주님이라고 호칭하지 않아서 주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주님을 주님이라고 호칭했기 때문에 인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호칭일 뿐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주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한다면 마땅히 그분의 말씀에 준행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자녀들이 부모를 엄마 혹은 아빠라고 부른다고 부모로 인정하는 것입니까? 그들이 진실로 자녀들이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는 것은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 아닙니까?부모님의 말은 듣지 않으면서 엄마 아빠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단지 호칭일 뿐이지 부모로 인정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자녀들이 부모를 부모로 인정한다는 것은 부모의 말을 잘 듣고 그 부모의 말에 순종할 때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우리 자신이 종려나무가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는 삶,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을 맞이할 종려나무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그런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면 주님 만날 수 없습니다.

내가 그분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주님을 만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인정하십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모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모였습니다.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예수님을 없애버리기를 원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대적했고 또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을 인정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인정하는 사람들 가운데 우리는 어떤 사람인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예수님을 인정한 사람들이 가장 기대한 것은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이기도 했지만 사실 더 큰 기대는 예수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유명한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 길목에 있는 베다니에 들러 예수님 보기도 하고 나사로의 집도 찾아갔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원했을까요?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인정했습니다.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열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의 육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인정하고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하나님으로는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주여!”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정말 내가 예수님을 인정합니까? 인정하지 않으니까 우리 가운데 순종하는 삶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순종 즉 말씀에 준행하는 삶은 복종의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더 깊은 의미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믿음이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단 우리가 준비해야 될 것은 내가 종려나무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종려나무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을 맞이할 때 첫 번째 준비입니다.

두 번째는 나가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오고 계시는 길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시겠다고 출발하셨으니 가만히 기다리면 예수님이 오실 것이고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성문으로 예수님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이미 출발하셨으니 기다리고 시간이 되면 예수님이 알아서 오실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기다리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급한지 얼마나 빨리 보고 싶은지 예수님 오실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나가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누군가를 기다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예를 들어 오랫동안 타지에 있던 자식이 집에 온다거나 멀리 출장이나 여행 가셨던 부모님이 오신다든가 친구가 찾아온다고 하면 시간 되면 올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보고 싶고 마음이 급하고 1초라도 빨리 보고 싶은 사람 어떻게 합니까? 나가서 기다렸다가 맞이합니다. 그 뜻입니다.

기다리면 때가 되면 오실 예수님을 가만히 기다리지 않고 나가서 맞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예수님이 그들에게 좋은 것을 가지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빨리 만나고 싶고, 예수님이 어서 오셔야 되고, 예수님을 속히 대면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분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오시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주님을 기다리고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오신다고 할 때,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이 기쁨이 되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이 우리에게 뭔가를 가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한테 뭔가를 받으러 오신다고 한다면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어떻게 종려나무의 삶을 살아가는지, 종려나무의 삶을 확인하고 평가하고 심사하여 점수 매기기 위해서 오신다고 믿는다면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종려나무의 삶을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분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가지고 오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 좋은 것을 가지고 오시는 예수님을 빨리 잘 만나려고 종려나무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좋은 것을 가지고 오시지도 않으시면서 종려나무의 삶을 살아라, 말씀에 준행하는 삶을 살라고 하신다면 그 예수님은 그렇게 우리에게 빨리 오셔야 될 분이 아닐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그렇게 기쁨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버선발로 달려 나가서 맞이할 분은 아닙니다.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다시 찾아오십니다.

주님의 시간이 차서 내게 찾아오시든, 내 시간이 끝나서 찾아오시든 주님은 반드시 우리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그 주님을 만나게 될 때 그 주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을 내게 선물로 가지고 오실 분이라는 믿음!

어떻게 이 땅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기다리고 그리스도의 신부로 조성되고 훈련되는 이 시간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주님이 내게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라는 믿음입니다.

좋은 것 가지고 오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라나다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며 그분을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두 번째 준비 맞으러 나가입니다.
그분이 내게 좋은 것을 가지고 오신다는 것을 기대하는 것!
정말 좋은 것을 내게 가지고 오신다는 것을 기대하는 것!

정말 원하는 것을 주님이 내게 가지고 오신다는 것!

 

세 번째는 외치는 것입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우리는 주님을 만날 때 기쁨으로 환호하고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변모하실 때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갈릴리에서 풍랑을 만났을 때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셨습니다. 제자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귀신이라고 하면서 놀랐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두려워 말라! 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부활하셔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에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 때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예수님이 반복하여 하셨던 말씀 가운데 하나가 바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맥락에서 보게 되면 예수님은 우리의 찬송이시고 우리의 기쁨이시고 우리의 영광이시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사모하고 고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종려나무의 삶,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라는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오신다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기뻐하고 환호하고 찬송하며 놀라운 선물을 주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성경은 그것을 우리들에게 묻고 계십니다.

나는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을까?

이렇게 준비된 자들이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 준비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인정하는 순종의 삶, 예수님이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소망의 삶, 예수님을 기뻐하는 찬송의 삶, 영광의 삶을 오늘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잘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순종도 소망도 찬송도 연약하다면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잘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14)

요한은 간략하게 쓰고 있지만 다른 복음서를 보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귀를 찾아오라고 명령하십니다.

나귀는 이미 예비되어 있었습니다. 제자들에게 나귀를 구해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어디 가면 나귀가 있을 터이니 그 나귀를 찾아서 가지고 오라고 하십니다. 혹 주인이 물어보면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면 주인이 내어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을 미루어 볼 때 예수님이 타실 어린 나귀는 이미 예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냥 나한테 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주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제자들을 보내서 찾아오라고 시키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가장 좋은 것들을 이미 예비하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믿음이 아닙니다. 찾아야 합니다.

제자들이 예비되어 있던 나귀를 찾아서 끌고 오지 않았습니까?

주님 예비하셨으면 나귀가 제 발로 와서 이 곳으로 오든, 주인이 가져다 주든 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7:8)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것이 다 예비되어 있다는 말씀을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알아서 우리에게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쉬운데 아닙니다. 예비되어 있을지라도 찾고 구하고 두드려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도만 하고 있으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찾고 구체적으로 두드리고 구체적으로 구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만 할 것이 아니라 열심히 책을 펼쳐놓고 공부해야 합니다.

부자 되게 해달라고 기도만 하면서 돈 떨어지기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열심히 돈 벌려고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그럴 때 찾게 되고 열릴 것이고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을 우리들에게 다시 한 번 가르쳐주는 묵상해야 될 말씀입니다.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15)

이 말씀은 스가라의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우리에게 왕이 오신다!”

그런데 사람들이 기다렸던 왕은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씀하신 온 우주의 통치자 메시아로 오시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즉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오시는 왕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통치 아래 있는 우리인데 그 사단의 통치를 깨뜨리시고 다시 우리를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데리고 가시는 것, 그것이 구원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왕으로 이해하고 기다렸습니까? 로마의 압제와 통치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켜주는 민족의 왕으로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그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니까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맞았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진짜 왕이 오셔서 우리를 해방시켜주실 것이다!”

우리를 자유케 하실 왕이 오셨다!”

우리를 독립시켜주실 왕이 오셨다!”

이렇게 외치면서 가지를 흔들었습니다.

그런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가만히 예수님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일찍 예수님을 보려고 달려 나가서 환호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의 기대가 무너졌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기다리던 분이 아니었습니다.

한번 이렇게 생각을 해봤습니다.

예수님을 환호하며 맞이했던 많은 백성들의 뜻대로 예수님이 정치적인 왕으로 오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람들은 정치적인 왕으로 오시지 않음에 매우 실망하고 심지어 분노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예수님이 정치적인 왕으로 오셔서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사람들을 모으고 군대를 만들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쟁입니다.

비참하고 혼란스러운 일들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으로부터 기대했던 것들을 얻지 못하게 될 때 그들은 크게 실망했고 심지어 분노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인생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대하고 구하고 원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게 주셨으면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어떻습니까? 실망합니다. 때로는 예수님에게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처음에 그들은 실망하고 분노했지만 결국 나중에 가서는 예수님이 무엇을 가지고 오시는지를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16)

한참 후에 깨달았습니다.

사실은 제자들조차도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로 기대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나라의 왕이 되시면 우리들에게 좋은 자리 하나 주시지 않겠어?’

심지어 두 제자는 어머니를 통하여 예수님께 큰 자리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저들도 실망했을 것입니다. 후회했을지도 모릅니다.

괜히 3년 낭비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가 원하는 거 주님이 하나도 주지 않는데 괜히 열심히 교회 섬기고 열심히 사역하고 열심히 헌신했네.’
이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이 되면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결국 우리에게 좋은 것이었구나.’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러 오신 분이지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주러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물론 때때로 그런 문제들이 해결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로마의 앞제 속에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정치적인 현실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함이 아니라 인생의 본질의 문제, 사단의 권세 아래에 놓여 있어서 죄의 종노릇하고 있는 그 문제를 해결해주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 것처럼 주님은 지금도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이 현실의 문제를 당장 해결해 주려고 오신 분이 아니라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오셨습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그리스도는 그 일을 우리 안에서 이미 행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시며, 반드시 그 일을 성취하실 것을 끝까지 믿으십시오.

이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종려나무를 흔들면서 호산나 찬송하면서 환호했지만 며칠 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원하는 대로 해주실 때에는 얼마든지 환호하고 찬송하면서 종려나무를 흔들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내 뜻, 내 마음,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면 곧바로 돌아서서 실망하고 절망하고 낙심하지 않습니까? 예수님한테 섭섭하여 믿음의 삶을 살아가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분은 인생의 본질의 문제를 해결해 주러 오신 분입니다. 결국 우리는 그것을 깨닫게 되고 알게 되고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내 인생의 본질의 문제를 해결해 주러 오셨구나.’

지금 미리 믿음으로 보고 믿음으로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된 자로 내 삶이 종려나무의 삶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내 인생에 가장 좋은 것을 가져오시는 분인 줄 믿고 오직 주께만 소망을 두는 삶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영광을 기다리며 주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신 것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송하는 삶을 잘 살게 해 주셔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잘하여 주님이 우리 가운데 오실 때 두려워 떨면서 그 시간을 미루어 달라고 사정하는 자들이 아니라 잘 준비되어 있는 자들로 오늘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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