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잘해보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 됩니까? 거룩이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성의 성벽이 무너졌다면 아무리 새롭게 시작하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일곱째 달 초하루”(2절), 종교력으로 7월 1일인 이 때는 유대 민간력으로 새해입니다. 즉 무너진 거룩의 성은 말씀으로부터 새롭게 시작되어야 회복할 수 있습니다.
7월 1일, 이스라엘의 모든(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성벽 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이 때 그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말씀 앞에 섰을까요?
‘알아들을 만한 사람들’이 모였다고 2절과 3절에서 말씀합니다.
율법책의 내용을 알아들을 만한 사람만 골라서 나오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깨닫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태도로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습니까?
‘무슨 내용인가 한번 보자.’ ‘오늘은 설교 어떻게 하나 한번 들어보자.’
이렇다면 백날 천날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을지라도 말씀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뭇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는데”(3절) 원문대로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귀가 율법 체계에 붙었다.”
모인 사람들이 에스라가 읽는 율법책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말씀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하나님 그 자체로 이해했기 때문에 위대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가만히 앉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어서서 세 가지 동작을 하므로 말씀 앞에 순종할 것을 표현했습니다.(5, 6절 참조)
아멘으로 응답했습니다.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했습니다.
에스라가 율법책을 읽자 레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줬습니다.(7절)그 때 백성이 깨달았고 회개했습니다.(8, 9절 참조)
사람들에게 틀렸다고, 잘못했다고 지적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가르쳐줘도 모릅니다.
지적하지 말고 말씀의 진리의 빛이 그의 심령 가운데 비춰주기만 기도하십시오. 빛이 나에게 비출 때 비로소 내 어둠을 볼 수 있기를 먼저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에스라가 낭독할 때 율법 법 앞에 모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내 심령도 그렇게 되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헛된 삶을 살고 있는지, 내가 왜 이렇게 사나운지, 내가 왜 이렇게 나귀처럼 목이 굳었는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백성들이 회개하며 울었습니다.
말씀이 비추어지자 백성들은 자신의 죄가 고스란히 드러났고 그래서 솟구치는 회개의 심령이 되어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렇다면 더 울고 더 회개하도록 놔두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호와의 성일이니 울지 말라고 말합니다.
7월 1일은 새해 첫날이기 때문에 항상 기쁨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기뻐할 일이 없어도 기뻐해야 합니다.
눈 뜨는 하루의 첫 시간은 아침은 의지적으로 기뻐해야 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날,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날이니 내게 좋은 날일 것이고 때문에 기쁨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백성들도 감정을 통제하고 먹고 마시고 크게 즐거워했습니다.(12절 참조)
이처럼 말씀이 우리 감정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우리 심령 안에 선포되었지만 여전히 감정이 말씀보다 앞서고 감정이 말씀보다 중요합니까? 그렇다면 말씀을 읽은 것이 아닙니다.
나는 슬퍼서 우울한데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말씀 앞에 감정을 꺾어야 합니다.
내가 심장이 폭발할 것처럼 분노하는데 온유하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말씀 앞에 감정을 꺾어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 앞에 인격으로 만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인격으로 만난 것입니다.
“내 감정은 말할 수 없이 슬프고 애통하지만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의지를 다해서 이 감정을 꺾고 내가 이 지식에 순종하여 그대로 준행하리라.”
아무리 설교를 듣고 은혜 받았을지라도 이 세 가지 반응이 나타나지 않으면 성경을 책으로 읽은 것으로 불과합니다. 말씀의 빛 안에서 인격으로 말씀을 만나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더 사모하게 되자 어떻게 했습니까?
다음 날, 족장과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말씀을 밝히 알고 싶어서 에스라에게 모였습니다.(13절)
누가 지도자입니까? 말씀 앞에 깨어 있는 사람이 지도자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누가 가장입니까? 목소리 큰 사람이 가장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가장이 아닙니다. 말씀 앞에 깨어 있는 사람이 가장입니다.
교회에 누가 지도자입니까? 말씀 앞에 깨어 있는 자가 진짜 지도자입니다.
율법에 기록된 말을 본다(14절 참조)는 말씀은 눈으로 성경책을 본다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조사하고 뚫어지게 보고 샅샅이 찾는다는 뜻입니다.
지도자들의 심령이 깨어나니까 말씀에 대한 사모함이 얼마나 엄청나게 폭발하는지 모릅니다.
말씀을 읽다가 초막절 절기에 관한 규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포로 기간 내내 아니 사실 그 이전에도 초막절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다 잊어버렸습니다.
이 때가 7월 2일이었습니다.
마침 7월 15일부터 지내야 하는 초막절에 대한 규례를 읽은 후 어떻게 했습니까?
준비가 미흡할지라도 바로 준행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초막절의 정신을 잊고 살았는데 말씀에 순종하므로 역대급 초막절을 보내게 됩니다. 말씀이 회복되자 그들의 신앙 안에 진정성이 담기게 됩니다. 이것이 거룩의 출발입니다.
말씀 앞에 섰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도 거룩한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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